-등장인물-
최범식(남, 가명) 정년퇴임하고 연금 받아 생활하는 60대 중반 남성
김미순(여, 가명) 최범식씨의 아내, 60대 초반의 주부
남효승(여) 송파구 가락동 대성공인 대표
때는 2007년
아들이 찾아왔다.
구구절절하게 요즘 자기가 하는 사업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결론은 급하게 자금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남준: “아버지, 도와주세요”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아들의 사업자금 2억 원을 대출받아 줬다.
2009년 1월 차가운 겨울
나는 송파구 가락동에만 20년을 살았다. 우리집은 가락 시영아파트 2차 19평형. 가락시영은 단일아파트 재건축 사업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재건축되면 39만 8,000㎡부지에 8,000여 가구가 넘는 세대가 들어선다. 이러한 ‘재건축’이라는 대형 호재덕분에 집값은 꾸준히 올랐다. 지난해 2008년 봄에는 현재까지 최고가인 12억 원에도 거래가 됐다.
하지만 그 해 가을부터 금융위기에 대출규제까지 악재가 불어 닥친데다 재건축 조합과 범비상대책위원회(범대위) 사이의 갈등도 격해져 아파트 값이 예전 같이 상승세를 타지 못한다.
조합과 범대위의 갈등은 정부가 아파트 재건축 때 용적률을 국토계획법의 상한선까지 허용하는 것을 추진하면서 부터이다. 기존에 250%까지 적용됐던 것이 최고 300%까지 적용받을 수 있게 된다. 상한선까지 허용되면 용적률의 25%를 임대주택으로 짓지 않아도 되고 추가분담금도 줄어들어 사업성이 크게 좋아진다고 한다.
범대위는 새 법에 따라 재건축하면 일반분양 물량이 700여 가구 가량 더 늘어나서 조합원 한 가구당 분담금이 1억 원 정도 낮아진다면서 총회를 열어 조합장과 임원진을 바꾸고 사업 절차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계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사업이 주춤, 중단되면서 아파트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우리부부는 때 늦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내가 퇴직한 후 연금을 받아 생활하는데 아들 때문에 받은 2억 원 대출, 이자를 갚아 내기가 버겁다. 아들은 매월 이자를 자신이 갚겠다고 하고 처음 한두번은 내더니 번번히 이자를 갚지 않고 있다. 아파트가 담보였지만 내 앞으로 소득이 없었기 때문에 이자율은 높았고 우리부부는 매월 그 이자를 내면서 생활하기가 힘들었다.
2009년 5월
김미순: “여보, 우리 집 팝시다”
아내는 몇 주전부터 집을 팔자고 했다.
김미순: “아파트 가격은 떨어지고, 조합이랑 범대위랑 싸우고 사업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하는데 재건축 어느 세월에 되겠어. 그리고 이 가격이면 오를 만큼 올랐다고 생각해. 당장 먹고 살 돈도 없는데 몇 억짜리 집이 무슨 소용이야”
최범식: “하긴 그래. 재건축되고 입주하려면 추가분담금도 또 몇 억씩 내놓으라고 하겠지.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좁은 집에서…”
김미순: “이 집 팔면 주변에 더 넓고 좋은 집 사고도 남을껄. 남은 돈으로 우리 생활비하고…”
최범식: “그래. 당신 생각이 맞는 것 같다. 근데 요즘 아파트 값 떨어지는데 사려는 사람이 있을까?”
김미순: “싸게 내놓으면 팔릴꺼야. 부동산에 가보자”
우리는 며칠을 고민한 끝에 대성공인을 찾았다.
남효승: “어서오세요. 오랜만에 들르셨네요? 별일 없으시죠?”
아내와 나는 커피를 한잔씩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제2화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