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봄의 향연이 시작되는 3월의 어느 날. 한 남자가 중개업소에 들어왔다. 땅거미가 지는 나른한 오후. 손님의 등장이 너무 설렜다고 김대표는 그 때를 회상한다.
김재훈 대표의 컨셉은 '편안함'이다. 손님이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먼저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다. 그 날도 손님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 갔다. 무엇을 위해 중개업소를 찾았는지, 어떤 물건을 찾는지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그 동안 중개업소를 운영해 오면서 터득한 노하우지만, 처음 중개업소에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목적부터 물으면 많이 부담스러워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일보단 그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먼저 나눕니다. 그러면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한 목적을 말해주죠.” (중략) “컨설팅은 20분에서 30분 정도로 간략하게 하는 편이고요.”
사실 장사하는 가게에서 손님들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물건을 파는 곳은 중개업소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편안함은 결국 중개업자와 손님 간의 든든한 신뢰를 구축해 주는 가장 중요한 행위이기도 하다. 김대표는 이런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위해서 손님과의 소통을 우선 시 한다.
다시 물었다. “컨설팅은 20분으로 짧게 하는 이유는 뭔가요?”
김대표는 “나는 내 물건에 자신 있으니까요. 간략하게 설명하고 마음에 들면 나와 거래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 않아도 된다”(중략) “뭐 이런 자신감이라고 해야 될까요?” 김대표는 스스로 이야기하고도 쑥스러웠는지,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수줍게 웃었다. 그만큼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이 있어 보였다.
다시 거래이야기로 돌아와 김재훈 대표를 찾은 손님은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처음 보이는 R-ACE공인을 무작정 찾은 것이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의 이름은 김명도이고, 반도체를 만드는 대기업에서 대리로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34살에 미혼으로 전세금 2억 5,000만 원에 명일동 33평형 아파트 전세를 살고 있었다.
김명도씨에게 김재훈 대표가 처음 물어본 말은 “왜 2억 5,000만 원이라는 전세금으로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들어가려고 합니까?”이다. 대출을 조금만 받으면 중소형 주택을 충분히 매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씨는 아파트 매입에 전혀 뜻이 없었다고 한다.
그 때 상황을 김재훈 대표는 이렇게 회상한다. “당시 2010년은 매매시장이 불황기였습니다.” (중략) “시장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손님들 중에 대부분이 아파트를 사도 오르지 않을거란 생각들이 많았죠” “김명도씨도 아파트는 절대 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아파트값은 계속해서 떨어질 것 같다고……”
김재훈 대표는 이런 김씨가 답답했다고 한다. 2억 5,000만 원을 전세금으로 묶어두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이면서 손해인지, 김씨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고 했다.
김대표는 김씨에게 계속해서 아파트로 내 집 마련을 하라고 설득했다. “명도씨 2억 5,000만 원이란 큰 돈을 아무것도 안하고 전세금으로 묻어두면 얼마나 손해인지 아세요?”(중략) “전셋값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오를 겁니다. 재개발, 재건축 사업으로 도심 멸실가구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고, 주변에 공급은 부족해 결국 임대인들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겁니다”
그리고는 내 집 마련의 정당성에 대해 설명했다고 한다. “아파트값이 지난 10년과 같은 폭등은 없을지라도 더 이상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지금 상황은 아파트값이 고점 대비해서 10%이상 떨어져 있는데다 천호동은 더블 역세권에 백화점, 대형마트 등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충분히 상승여력이 있습니다” “여기에 천호뉴타운, 균촉지구 등의 개발이 진행되면 지가상승에 따른 아파트값 상승도 기대할 수 있고요”(중략) “여기에 지금 5%대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대출규제도 풀려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내 집 마련을 하는게, 전세금으로 묶어두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입니다”
이런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김씨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요즘 인구감소, 보금자리 뭐 이런 것 때문에 앞으로 아파트값 떨어진다고들 난리던데요. 하우스푸어라는 용어도 나오고 있고요” (중략) “이런 상황에서 괜히 대출받아서 아파트 샀다가 집값이 떨어지면 어떡해요. 그냥 전세가 마음이 편안할 것 같아요”
김재훈 대표는 답답했다고 그 당시 상황을 전한다. “요즘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 다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5,000만 원 정도만 대출을 받으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는데도 안 사더라고요” “뭐 그 당시 분위기가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었지만, 계속 전세로 살았으면 아마 올해 전세금으로 2,000만~3,000만 원을 더 올려줘야 했을 거에요”
김명도씨의 강한 부정에 김재훈 사장은 오히려 의무감 혹은 책임감 같은게 생겼다고 한다. “제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안타까운게 많습니다” “김명도씨도 지금 제대로 자산설계를 해놓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직장을 다녀도 나중에도 남의 집을 전전하는 경우가 생겨날 수도 있거든요” “좀 더 살아온 내가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사람이 마주앉아서 한동안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그냥 전세물건 하나 구해주고 끝낼까?’ 김재훈 대표는 여러가지 생각에 잠겨있다가 순간 머리 속을 확 때리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속으로 ‘너의 전세살이를 종결 지어주마’라고 마음먹고는 다시 하얀 A4용지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김명도씨는 더욱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아파트가 싫다면 일반주택으로 매입해보는 건 어떨까요? 8가구가 들어있는 신축 다세대주택이 나와있는데, 시세보다 20%정도 저렴하게 나와서 11억 4,000만 원정도면 매입 가능합니다.”
제3화 서른네살, 10억원대 자산가가 되다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