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부터 공업지로 유명했던 문래동에는 바보 공인중개사가 있다. 그는 가로등이 없어 캄캄한 길을 밝히기 위해 늦게까지 불을 켜두고, 돈없는 미대생이 공방을 임대하기 위해 찾아오면 중개수수료도 안받고 임대인을 소개시켜준다.

“사장님 이렇게 장사해서 어떻게 돈벌려고요!”라며 성내는 이실장의 말에도 그저 웃기만 하는 구병국씨. 한여름 샌들을 신고 문래동 공장지대를 웃는 모습으로 휘젓고 다니는 그는 돈벌줄 모르는 ‘바보’ 중개업자다.

‘딸랑딸랑’

구병국 : “어서오세요”
김지헌 : “아… 제가 작은 사업을 시작하려 하는데, 괜찮은 공장하나 알아볼 수 있을까요?”
구병국 : “어떤 사업을 하시려는 건지 알아야 적당한 공장자리를 알아봐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시간 괜찮으시면 여기 앉으셔서 천천히 얘기하시죠.”
김지헌 : “그럴까요? 하하”

얼굴에 장난기 많아 보이는 이실장이 시원한 냉커피를 내온다.

구병국 : “날도 더운데 어쩐일로 문래동공장에 오셨습니까?”
김지헌 : “사실은 좀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을지 알아보다가 여기로 가보라는 얘기를 듣고서 왔지요…”
구병국 : “하하하하 잘오셨습니다. 얼마정도를 생각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김지헌 : “제가 30평 정도 필요한데, 보증금 500만 원에 임대료 100만 원 정도면 가능할까요? 사업이 처음 시작하는 단계라서 설비를 구입하려면 보증금이 500정도 밖에 안될 것 같은데…”
구병국 : “음… 임대료가 낮아서 힘들 것 같긴한데… 일단 놀고있는 공장을 찾아서 주인을 설득하는 방법 밖에 없을 것 같네요”
김지헌 : “힘든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마지막으로 시도하는 사업이라서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구병국 : “아유 무슨 말씀을 그렇게… 최대한 빠르게 알아봐드릴게요. 그런데 마지막 사업이라니요?”
김지헌 : “그게… 제가 전에 사업을 좀 했었거든요…”

더듬거리는 김지헌씨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과거사는 파란만장했다. 그는 부인과 함께 성수동에서 볼링장을 크게 운영했었다. 자녀들이 용돈달라고 징징대는 소리 한 번 들은적이 없을 정도로 풍족하게 살았다.

어느날 볼링장을 운영하던 건물이 주인의 무리한 대출로 경매로 넘어가면서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다. 아이들 대학보내고 시집보낼돈과 노후대책으로 마련했던 돈을 끌어모아 다시 한 번 볼링장을 차려봤지만 장사가 안돼서 일찌감치 접었다. 그래도 ‘부자는 망해도 삼년은 간다’하지 않았던가.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서 어릴적부터 머리가 좋았던 죽마고우와 함께 벤처사업을 시작했지만 충분한 사전준비를 하지 못했던 탓에 사업도 쉽게 무너졌다.

벤처사업을 시작하면서 규모를 줄였던 집을 다시 한 번 전세로 돌려서 남은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할지 고민하던 그는 고심 끝에 고기불판을 세척해주는 사업을 구상했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시작한 사업아이템이지만 자신만의 사업 아이디어가 있어 승산이 있어보였다. 작은 공장을 여기저기 알아보던 중 문래동이 떠올랐고, 공장을 구경하며 서성거리다가 구병국씨를 소개받게된 것이다.

구병국 : “휴… 정신없이 살아오셨군요”
김지헌 : “제가 못난 탓이죠. 그래도 욕심 때문에 이제껏 개인사업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구병국 : “잘 알았습니다. 일단 임대물건을 찾아보고 연락드릴 테니 그때 다시 오시죠”
김지헌 : “네… 잘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구병국 : “조심히 들어가세요”

부동산뱅크 김두연기자 emym283@neonet.co.kr